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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go más de Corea del sur/한국 문화_La cultura de Corea

위기에 유독 강한 DNA를 가진 파워 지구인

by DIEGO KIM 2020. 9. 20.

"역사상 1,000번에 가까운 외세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지킨 나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50년 만에 세계 경제대국 10위의 나라로 발돋움한 나라"

이런 화려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바로 한국입니다.

한국이 이러한 타이틀을 가지게 된 데에는 숱한 고난과 역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천 년동안 외부세력의 침입을 겪어왔기에 힘을 합치지 않으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관념이 한국인의 머리 속에 자리잡았습니다. 집안 식구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다가도 외부에서 도둑이 들어오면 싸움을 멈추고 힘을 합쳐 그 도둑에 맞서 집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과정을 수없이 거치며 한국인들은 자연스레 위기에 강한 DNA를 갖추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인들의 위기극복 DNA가 돋보였던 장면들을 모아봤습니다.

IMF 외환위기

한국의 경제는 한국전쟁 이후 50년 간 세계 무역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빠른 성장을 이루어냈습니다. 하지만 1997년,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낍니다. 그동안 기업들이 다른 나라에서 무리하게 돈을 빌려 기업의 몸집만 키웠습니다. 한국 정부는 외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나라 안에 외화가 부족했습니다.

외화가 부족해 외국에서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고, 물건을 만들 원료를 수입할 수도 없는 등 여러 문제가 생겼습니다. 나라의 경제가 휘청거리자 문을 닫는 기업과 공장이 늘어나고 직장에서 쫓겨나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결국 한국은 국제 통화 기금(IMF)으로부터 부족한 외화를 빌리고, 관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기업들은 문어발처럼 벌인 사업을 정리하고, 중심이 되는 사업에만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정부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투자하도록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국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검소하게 생활했고, 금 모으기 운동도 벌였습니다. 이러한 노력들 덕분에 한국은 IMF 외환위기가 발생한지 4년만인 2001년에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나라의 경제도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 6분,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 해상 크레인과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이 사고로 인해 12,000여 킬로리터의 원유가 유출되었습니다. 이 사고는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해양오염 사고로 기록되었습니다.

어업으로 생계를 꾸리던 지역민들은 심각한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고, 원유 유출로 바닷물이 혼탁해지고 물속에 포함되어 있는 산소량을 의미하는 용존 산소량이 줄어들면서 인근 양식장의 굴, 김, 바지락 등의 어패류가 대량으로 폐사했습니다.

당시 환경 전문가들은 태안 앞바다에 대해서 수십년이 걸려도 사고 이전으로 되돌리기 힘들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검은 바다를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마음은 절망과 분노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기름 범벅이 된 바다를 방치할 수 없다는 간절한 마음은 그들의 발길을 태안으로 이끌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태안으로 달려온 한국민은 추운 날씨에도 기름을 퍼내고 갯바위를 닦았습니다. 매주 주말과 휴일이면 일상을 내려놓고 태안에서 검은 기름과 사투를 벌이는 자원봉사자들이 많았습니다. 기름 유출 사고 이후 수년간 자원봉사가 계속되었는데 총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태안을 다녀갔습니다. 

태안 앞바다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빠른 속도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사고 발생 2년 만에 태안 앞바다에 서식하는 생물들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해수 내 잔존기름도 점차 줄어들어 2014년 0%를 기록해 사고가 발생한 지 7년 만에 모든 기름이 사라졌습니다. 세계 환경 전문가들도 “사고 이후 전국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이 아니었다면 이런 변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코로나 19사태 시민들의 성숙한 자가봉쇄로 위기를 극복한 대구

비교적 최근의 일인 코로나 사태. 2020년 2월 18일, 한국 도시 대구의 한 교회에서 발생한 코로나 확진자로 인해 하루에 한 자리수로 늘어나던 한국의 코로나 확진자 수는 일일 세자리 수 이상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빠른 속도로 불어나는 확진자 숫자에 비해 병상의 수가 모자라 사망자가 속출하고, 그에 맞춰 시행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구의 경제는 얼어붙었습니다. 대구 시민들은 크나큰 절망감에 빠집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구에 봉쇄령을 내려야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대구 시민들은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는데 집에서 자체적으로 자가격리를 취하면서 다른 도시로의 이동을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의료진들은 두꺼운 방호복을 입고 땀벅벅이 된 채 환자들을 정성껏 치료하고, 의심환자들과 확진자는 자신의 검사차례와 입원순서를 꿋꿋이 기다렸습니다.

대구 시민들은 직장 출퇴근과 마스크를 사러갈 때를 제외하고는 밖으로 아예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마스크 물량 조절 실패로 마스크를 사기 위해 100m에 이르는 긴 대기줄이 생겼을 때도 새치기 하려고 싸우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대구 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의료진의 헌신으로 현재(2020년 9월 기준) 대구는 일일 코로나 확진자가 한 자리수로 줄었고, 코로나 이전의 일상은 아니지만 상당히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았습니다. 

한국 코로나19 사태 초기 대확산의 기폭제가 되었던 도시 대구. 코로나19에 의연하게 대처한 대구시민들의 모습은 세계 외신들의 주목을 받아 국가적 위기 대응의 전세계적인 모범이 되었습니다.

한국인의 위기극복 DNA 지금도 작동중

지금까지 한국인이 위기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쭉 살펴보았는데요. 이렇듯 한국인들은 예상치 못한 국가적 위기 상황 앞에서 하나로 똘똘뭉치고 그 위기를 잘 극복해나갑니다. 넘어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오뚜기 같은 존재, 그 존재가 바로 한국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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